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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4 Udienza Generale 2024.12.04 Udienza Generale  (VATICAN MEDIA Divisione Foto)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전쟁과 무고한 이들의 고통 속 지옥으로 내려오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4월 2일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통해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희망을 발견한 자캐오의 이야기를 묵상했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예리코에서 자캐오를 만나셨다며, 그곳에서 길을 잃은 이들을 찾고자 하셨다고 말했다. 교황은 자캐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릇된 선택을 하거나 힘겨운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교황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로운 시선이 머무른다고 설명했다.

[2025년 희년 교리 교육]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제2부: 예수님의 생애: 만남들
3. 자캐오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복음서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계속 묵상해 봅시다. 이번에는 자캐오의 이야기를 살펴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저의 영적 여정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저에게 무척 소중합니다.

루카복음은 자캐오를 구원의 희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인물로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하지만 자캐오는 주님께서 이미 자신을 찾고 계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예리코, 말하자면 지옥을 상징하는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이들을 찾으려 하셨습니다.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오늘날에도 현대판 지옥들을 찾아 내려가십니다. 전쟁의 참화 속으로, 무고한 이들의 고통 속으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의 무너지는 마음속으로, 배를 곯는 가난한 이들의 삶 속으로 내려가십니다.

자캐오는 어떤 의미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릇된 선택을 했거나,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실제로 이 인물의 특징을 상세히 묘사합니다. 단순한 세리가 아니라, 침략자 로마인들을 위해 동포에게서 세금을 걷는 사람이자 세리들의 우두머리로 소개합니다. 이는 그의 죄가 참으로 무거웠음을 뜻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더 나아가 자캐오가 부자였다고 언급하며, 그가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다른 이들을 착취하며 재산을 모았음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하지만 이런 삶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자캐오는 틀림없이 깊은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리코 거리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캐오는 그분을 한번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감히 꿈꾸지도 못했지만, 그저 멀리서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간절한 소망도 종종 여러 장애물에 부딪히게 마련이고,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캐오에게는 그 장애물이 바로 작은 키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현실과도 닮아 있지 않나요? 우리 모두에게는 스스로 극복해야 할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자캐오처럼 우리도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는 상황을 경험합니다. 군중들은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자캐오에 대한 일종의 보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법입니다. 해결책은 언제나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용기가 필요하고, 부끄러움을 떨쳐내야 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필요하고, 자신의 체면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 자캐오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이 장소는 탁월한 자리였을 것입니다. 특히 나뭇잎 뒤에 숨어 자신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은 충분히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위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개입하시면 항상 뜻밖의 일이 일어납니다. 그곳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는 고개를 들어 자캐오를 올려다보셨습니다. 자캐오는 들켰다는 생각에 아마도 공개적인 질책을 각오했을 것입니다. 군중도 예수님에게서 그런 행동을 바랐겠지만, 이내 그들은 실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어서 내려오라고 하시며, 마치 그가 나무 위에 있는 것을 신기해하시듯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하느님께서는 길을 잃은 이를 찾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자캐오의 기쁜 마음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인정받고, 무엇보다도 용서받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눈길은 책망이 아닌 자비의 눈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비를 때때로 부담스러워하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가 보기에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까지 하느님께서 용서하실 때 그러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한계를 두고 싶어 종종 투덜거립니다.

예수님을 집에 맞아들인 자캐오는 그분에게서 용서의 말씀을 듣고 마치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처럼 일어섭니다. 자캐오는 일어서서 중대한 결심을 밝힙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약속하죠. 이는 자신이 용서받은 데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캐오의 이 약속은 자신을 먼저 찾아와 사랑해 주신 주님께 대한 진심 어린 감사의 표현입니다. 용서받기 위해 보상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캐오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자발적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횡령에 관한 로마법과 참회에 관한 유다교 율법에 따라 이 결심을 내렸습니다. 자캐오는 그저 소망만 품는 사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의 결심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자신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정직하게 돌아보고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자캐오에게서 배웁시다. 자캐오는 우리가 소외감을 느끼거나 스스로 변화할 힘이 없다고 느낄 때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우리의 열망을 키우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길을 잃었든 간에 언제나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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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09 4월 20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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