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 Papa da Lampedusa, l'Europa chiamata a responsabilit� epocale ++ ++ Il Papa da Lampedusa, l'Europa chiamata a responsabilit� epocale ++  (ANSA)

[람페두사 미사 강론] 교황, 바다에서의 죽음은 잘못된 결정의 희생양, 유럽은 막중한 책임을 져야…

레오 14세 교황이 7월 5일 람페두사 섬 사목 방문을 마무리하며 “아레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미사를 거행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난파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최근 몇 년간 이주민을 환대하기 위해 노력해 온 민간, 사회 및 교회 기관들과 “연민의 기적”에 감사를 표했다. 아울러 유럽 대륙에 무력의 논리보다는 평화를 선택할 것을 호소했다. 교황은 종교나 이주민과 관광객 사이에 만들어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오 14세 교황의 람페두사 섬 사목 방문

레오 14세 교황의 미사 강론

살리나 지역의 “아레나” 스포츠 경기장

2026년 7월 4일, 토요일

 

교황의 인사말

존경하는 시장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시장님,
존경하는 주교님과 자치단체 관계자 여러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람페두사 섬과 리노사 섬 자치단체를 대표하여 환영 인사를 전해주신 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저를 환대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파발로로 항구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여러분 공동체와 우리 이주민 형제자매와 맺은 유대의 상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어려운 시기에 여러분 곁에 계셨습니다. 오늘 저는 교황이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하고, 여러분을 지지하며, 여러분을 격려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연설을 하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나타내는 최고의 표징인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쪼개시며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행위는 우리가 매일 행하는 도움과 나눔의 행위에 의미와 힘을 실어줍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말보다 행위가 더 큰 의미를 갖는 곳입니다. 하지만 인간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는 행위에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을 얻어, 오늘과 내일의 세상이 더욱 인간다워지고, 모두에게 더욱 인간다워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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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강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십니다. 이 바다와 섬, 그리고 여러분 얼굴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분의 이타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보다 앞서 존재하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하나로 묶어줍니다. 지난 2013년 7월 8일,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첫 방문지로 람페두사 섬을 선택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발자취를 따라 여러분을 방문할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사도들은 지중해를 항해하며 수천 년 동안 문명의 교차로였던 그곳 섬과 해안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경험했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이 만나고, 사람들이 서로를 환대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얽히고, 서로 다른 문화가 대화하는 곳마다 울려 퍼집니다. 하지만 각자가 자신을 고립시키고, 접촉을 피하고, 교류가 단절되는 곳에서는 복음은 침묵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방금 선포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으며(루카 10,25-37 참조), 교황의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은 우리가 여전히 처해 있는 극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 비유를 다시 읽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우리를 변화시키는 대화로 이끌어 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분의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람페두사 섬과 리노사 섬은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처럼(30절 참조) 위험한 길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한 사람이 아니라, 수천 명이 강도의 손에 넘어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구타당한 후,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리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루카 10,30 참조).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느낍니다. 그들의 존재는 배에서 내려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우리에게 큰 도전을 던집니다. 사실, 어떤 지적인 고찰이나 이념적 신념에 앞서,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우리 앞에 누워 있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라고 촉구합니다. 히브리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히브 13,3).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비유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웃이 되어 주고,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루카 10,36-37 참조)!

람페두사 섬의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보여준 깊은 유대에 감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자비의 기적이 다시 한번 일어났습니다.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33절). 이는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감정”을 일깨우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삶을 확장하는 내면의 혁명입니다. 수년간 봉사해 준 자원봉사자, “람페두사 연대 포럼”에 모인 단체, 시민 단체, 해안 경비대, 시장들 및 행정 기관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부제, 사제, 수녀, 의사, 심리학자, 교육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보안군과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서로 사랑하기로 선택한 모든 이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주민에게 보여준 유대는) 여러분 가운데 사랑이 싹텄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형제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연민은 마치 첫 번째 전율과 같고, 결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행하도록 이끄는 심오한 부름과 같습니다. 이곳에 계신 이주민 여러분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은 단순히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을 돕는 모습을 통해 여러분의 여정 내내 연대를 보여주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따뜻한 이웃이 된 것은 결코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우리에게 사랑은 언제나 자유에 있고, 자유는 결정에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다른 이들과 가까워지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어떤 결정도 하지 않기로 한 이들도 있습니다. 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은 이미 내린 결정과 내리지 않은 결정 모두의 희생자들입니다. 공동선에 대한 무관심과 그들이 태어난 곳의 부패, 빈곤과 소외를 초래하는 세계 경제 시스템, 편견과 경멸을 조장하는 두려움,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생각,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자들의 범죄적 계산, 단순히 비상사태 관리에서 유기적이고 공유 가능한 정책 개발로의 느리고 어려운 전환 등, 이 모든 것이 오늘 복음의 이야기처럼 “지나가 버리려는”(31-32절 참조) 조급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복음의 비유에서 사제는 “마침”(31절)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고, 그 뒤에 레위인도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강도를 만난 이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는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오염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고통과 죽음 앞에서조차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 모든 인간의 무한한 존엄성과 한없는 사랑으로의 부르심을 부인합니다. 종교가 결코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증명해야 할 때입니다. 마치 신앙에 경계가 있는 것처럼, 보편적인 구원의 부르심이 아닌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리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 참조). 이웃 사랑이 없이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없고, 내가 이웃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이웃도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멈추고, 감동하며, 겸손해지고,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신 사랑의 움직임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비와 연민이라는 이 역동적인 흐름에 이끌리는 사람은 누구나 다르게 살고, 다른 시민이 되며, 다르게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비로소 저의 거룩한 전임자이신 성 요한 23세 교황님, 성 바오로 6세 교황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꿈꿨던 사랑의 문명이 진정으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지난 세기의 수많은 예언자와 순교자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인간 마음의 깊은 곳과 전쟁의 참혹함에 오직 자비만이 새로운 시작으로 응답할 수 있음을 이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위대한 선구자들의 업적을 발판 삼아 사랑의 문명을 영적, 문화적, 법적, 정치적, 경제적 형태로 구현해야 하는 새로운 천년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엄청난 고통이 이 소명의 근본적인 의미를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우리도 계획과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보다 더 많은 자원과 기회가 우리에게 있으며, 이를 통해 희망을 역사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루카 10,34)주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사랑의 문명은 단 한 번의 화려한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화에 맞서는 장벽 역할을 하는 작지만, 끈질긴 충실한 행동들의 총합에서 나온다”(교황 회칙 「위대한 인간성」(Magnifica humanitas), 213항)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람페두사 섬 친구 여러분, 여러분이 바로 그 증인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마주할 때 이 시대를 더 잘 이해하고, 각자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동일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 하지만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행동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서 무관심, 냉소, 거짓, 증오를 통해서라도 힘의 논리를 조장할지, 아니면 진리, 절제, 친밀함, 배려를 통해 평화의 논리를 수호할지 선택해야 합니다”(「위대한 인간성」, 212항).

그러므로 지중해 연안, 유럽의 이 외딴곳에서 우리는 이주 현상이 유럽 사회에 던지는 시대적 요구를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생태적 전환이나 평화 증진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측면에서 유럽은 역사와 문화에서 비롯된 독특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 또한 져야 합니다. 지리적 위치와 제도적 구조를 고려할 때, 유럽은 이 분야의 위기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이주민을 환대, 보호, 지원 및 통합하는 동시에 개발을 위해 노력하여 누구도 강제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지 않도록 하는 장기 전략 계획에 응급 지원을 통합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공공 기관뿐만 아니라 시민 사회 전체와 교회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최근 스페인 사도 순방 중 테네리페에서 말씀드렸듯이, 람페두사 섬에서도 환대 문화는 관광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문화는 이주 경로로 인해 위협받을 수 있으며, 이주 경로의 극적인 측면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이에게 휴가는 그저 기분 전환,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 근심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난파 이주민들의 바다와 휴가객들의 바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용기를 가져보세요. 창의력을 발휘하여 조금씩 노력한다면, 이 섬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오는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가 여러분의 사랑을 통해, 바다가 여러분에게 가르쳐준 것들, 여러분을 성장시킨 만남들을 통해 더욱 인간다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진정한 휴식은 삶의 의미를 재발견할 때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행복은 공정하고 형제애 넘치는 경제 체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 속에서 피조물에 대한 보살핌과 사회적 우정이 오늘날 인류가 추구하는 조화로운 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말씀은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다”(히브 13,2)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각자의 작은 실천을 통해 우리가 더 큰 규모로 함께 이루어 낼 수 있는 이상을 보여주는 예언의 본보기가 되어 주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은 사랑만이 해소할 수 있는 분열과 차이를 극복하며 가장 먼저 혜택받을 것입니다. 특히 본당이 복음의 가르침을 통해 친교의 정신으로 서로 환대하고, 동행하며, 통합하는 법을 배우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제대 옆에는 람페두사 섬의 수호성인인 포르토 살보의 성모님(Madonna di Porto Salvo) 이콘이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의 삶을 폭풍우 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비유하고, 그 운명을 안전하고 안락한 항구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고, 일상의 어려움을 기회이자 증거의 시간으로 여기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련과 헌신의 세월을 통해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기를 바랍니다. 이 공경받는 성모님 이콘이 여러분에게 다시금, 이 신심을 전해준 이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성모님의 전구에 자신을 맡겼던 그 시절의 힘으로 여러분에게 말을 걸어오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안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찾을 수 있으며,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지상에서 그 피난처를 반영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람페두사와 리노사 공동체 여러분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숨결이 언제나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오샤(O’scià)!” [‘내 숨결’, ‘내 영혼’을 뜻하는 람페두사 섬에서 흔히 쓰는 인사말].

 

 


번역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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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7월 2026, 0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