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운데-빌 미사 강론] 교황: “복음의 사회적 차원은 갈등과 “무익한 투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황 성하의 미사 강론
야운데-빌 공항
2026년 4월 18일 토요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평화를 빕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 길을 밝혀 주시고 인생의 폭풍우를 가라앉혀 주시기를 빕니다.
저의 카메룬 방문을 마무리하며 이 거룩한 미사를 거행합니다. 저를 따뜻하게 환대해 주시고, 우리가 함께 나눈 기쁨과 신앙의 순간들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것처럼, 신앙은 우리에게서 혼란과 고난을 면제해 주지는 않으며, 때로는 두려움이 우리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갈릴래아 호수 위의 제자들에게 그러하셨듯, 예수님께서 그런 순간에도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심을 알고 있습니다.
세 명의 복음사가가 우리가 들은 이 사건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록했습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거센 바람으로 노를 젓느라 애쓰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다가가시고, 그분께서 배에 오르시자마자 바람이 멎었다고 전합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 스승님께 가려다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의 손을 잡아 구해주시며 신앙이 부족함을 꾸짖으셨다는 세부 묘사를 더합니다.
오늘 선포된 성 요한의 복음(요한 6,16-21 참조)에서는 구세주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시며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2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복음사는 “이미 어두웠다”(17절)고 강조합니다. 유다 전통에서 “물”은 깊이와 신비로 인해 종종 저승, 혼돈, 위험, 죽음을 상징하며, 어둠과 함께 인간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악의 세력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탈출기의 기억 안에서, 물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시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수 세기를 항해하며 수많은 폭풍과 역풍을 겪어왔으며, 우리 또한 티베리아 호수를 건너던 제자들이 느꼈던 두려움과 의구심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반대 세력에 짓눌려 가라앉는 것 같고, 모든 것이 어둡고 외롭고 연약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악의 권세보다 강하시며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폭풍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되풀이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넘어짐 속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그 어떤 폭풍에도 굴하지 않고 용기와 신뢰를 가지고 언제나 앞으로 나아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과 가족, 일과 신앙을 충실히 살아가며 우리 교회와 공동체를 빛내고 있습니다.”(교리, 2014 5월 14일, 2)
예수님께서는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그분은 폭풍을 즉시 가라앉히기보다 위험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제자들처럼 한 배에 타서 서로 연대하며 머물 것을 권고하십니다. 고통받는 이를 멀리서 바라보지 말고 가까이 다가가며, 서로를 굳게 이어 주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삶의 역경 앞에 홀로 남겨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 모든 공동체는 연대와 상호 부조의 구조를 만들고 지탱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사회적, 정치적, 보건적, 경제적 위기 앞에서 모든 이가 각자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에서 모든 이의 기여가 세상의 눈에 비친 지위나 위치와 상관없이 중요하고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따라서 “두려워하지 마라”는 권고는 사회적·정치적 차원에서도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가난과 정의와 관련된 문제를 공동체 의식과 시민적 책임을 가지고 함께 해결하라는 격려입니다. 신앙은 영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특히 가장 약한 이들의 필요에 응답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공동체의 구원은 개인의 고립된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복음의 영적·윤리적 차원을 제도와 구조의 중심에 통합하여, 그것들이 공동선을 위한 도구가 되도록 하는 공동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것들이 갈등이나 이해관계, 혹은 헛된 싸움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1독서(사도 6,1-7)는 교회가 성장의 과정에서 겪은 첫 번째 위기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보여줍니다. 제자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공동체는 사도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자선의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식탁 봉사에서 누군가가 소외되자 불평이 생겨났고 불의함이 공동체의 일치를 위협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매일의 봉사는 초대 교회의 핵심 관습이었으며 고아와 과부 같은 취약 계층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복음 선포와 가르침이라는 시급한 필요와 조화시켜야 했고, 해결책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함께 모여 걱정을 나누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대화하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처음에는 극복 불가능해 보였던 장애물과 오해를 넘어섰습니다. 그들은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뽑아 안수함으로써, 실질적인 봉사인 동시에 영적인 사명인 새로운 직무를 탄생시켰습니다.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받는 이들의 부르짖음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들은 공동체 내부의 분열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신성한 영감으로 성장에 적합한 새로운 도구를 마련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모두를 위한 풍요와 발전의 기회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때로는 가정과 사회의 삶에도 이러한 모습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항상 중심에 있고 불평등과 소외를 극복할 수 있도록, 관습과 구조를 바꾸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가장 비천한 이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이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선택임을 보여줍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98, 교황 권고『나는 너를 사랑하였다)』, 16-17).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작별의 인사를 나눕니다. 각자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고 교회의 배는 하느님의 은총과 각자의 헌신 속에 목적지를 향해 계속 항해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아름다운 순간의 기억을 마음속에 간직합시다. 어려움 중에도 예수님을 위한 자리를 계속 마련하며, 그분의 현존을 통해 매일 빛을 얻고 새로워집시다. 카메룬 교회는 살아있고 젊으며, 은사와 열정이 가득하고, 다양성 안에서도 활기차며 조화 안에서 아름답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교회의 기쁨 넘치는 현존을 더욱 꽃피우기를 바랍니다. 인생에서 늘 존재하는 역풍조차도 하느님과 형제들을 기쁘게 섬기고, 나누고, 경청하며, 기도하고, 함께 성장하려는 열망을 키우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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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종료 후 감사 인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거룩한 미사로 저의 카메룬 방문이 마무리됩니다. 이 나라의 대주교님과 모든 사목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모든 일정을 준비하고 조직하는 데 협력해 주신 모든 시민 당국과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특히 기도로 함께해 주신 병자들과 노인들, 그리고 수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카메룬에서 살아가는 하느님의 백성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주님 안에 굳건히 머무르십시오!
그분의 성령의 힘으로 여러분은 이 땅의 소금과 빛이 될 것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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