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4월 12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2권 56-58:

56.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이들, 곧 이것을 다른 것들보다 앞세워 다른 모든 것을 이것을 위하여 찾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 때문에 이 삶에 필요한 것들이 부족해질까 염려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앞서 이미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비록 필요한 것들이라 하더라도 “그 다음에 이것들을 찾아라”고 덧붙이지 않으시고, “이 모든 것은 곁들어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를 찾으면 이것들은 저절로 따라오며, 하느님 나라를 찾다가 그것들에서 멀어질 위험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와 필요한 것들을 각각 그 자체로 추구하려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후자를 전자를 위하여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부족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 6,24)는 말씀과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큰 선으로 여기면서도 동시에 세속적인 것들을 바라는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한 눈을 지니고 오직 주 하느님만을 섬길 수 있는 이는, 다른 모든 것들을 필요할 경우 오직 이 목적, 곧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취하는 사람뿐일 것입니다.

모든 군인들이 보급품과 급료를 받듯이, 복음을 선포하는 모든 이들도 양식과 입을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군에 복무하는 이들 가운데 모두가 국가의 선익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아니며, 많은 이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것 때문에 싸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 가운데 모두가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이들은 물질적 이익, 곧 보급이나 급료, 또는 그 둘을 위해 봉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해야 하며, 그 목적을 하느님 나라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들 안에서 우리는 단지 현세적 보상만을 생각해서도 안 되고, 그것과 하느님 나라를 함께 목적으로 삼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일”이라는 말씀으로 가리키고자 하신 것은 모든 물질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곧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일”이라는 말은 시간과 관련하여 과거 뒤에 오는 미래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할 때에는 영원한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일시적인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행위는 참으로 선하고 완전한 것이 될 것입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필요할 때가 되면, 곧 필요가 실제로 느껴질 때에, 여러분은 음식이나 음료나 의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가 그것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이러한 것들을 취하도록 우리를 밀어붙이는 것은 바로 필요 자체라는 뜻입니다. 제가 보기에 “고생”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얻게 된 나약함과 죽을 운명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시적인 필요의 형벌에 더 큰 짐을 더하지 않도록 하셔야 할 것입니다. 곧, 이러한 것들의 결핍 때문에 고통받을 뿐만 아니라,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셔야 할 것입니다.

57. 이제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하느님의 종이 자기 자신과 자신에게 맡겨진 이들에게 이러한 것들이 부족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더라도, 그가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주님의 계명을 어긴다고 곧바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셨던 주님께서(마태 4,11), 이후 누군가가 자신의 종들 가운데 이러한 필수적인 것들을 마련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모범을 보이시기 위하여, 스스로 돈주머니를 지니시어 필요할 때 지출할 것을 거기에서 꺼내 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맡아 관리하던 이는 배신자 유다였으며, 그는 도둑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요한 12,6).

또한 사도 바오로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내일”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해서는, 내가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에 지시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대로 하십시오. 매주 첫날에 저마다 형편이 닿는 대로 얼마씩을 자기 집에 따로 모아 두십시오. 그래서 내가 갔을 때에야 모금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내가 도착하면, 여러분이 선정하는 이들을 보내면서 편지와 함께 여러분의 고마운 선물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하겠습니다. 나도 가는 것이 마땅하면 함께 가겠습니다. 나는 마케도니아를 거쳐 여러분에게 가겠습니다. 사실 나는 마케도니아를 거쳐 가려고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과 함께 한동안 지내든가 아예 겨울을 나든가 하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나는 그저 지나가는 길에 여러분을 보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여러분과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순절까지는 에페소에서 지내겠습니다.”(1코린 16,1-8).

또한 사도행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서 안티오키아로 예언자들이 내려왔는데, 그 가운데 아가보라는 사람이 일어나 성령의 감동으로 온 세상에 큰 기근이 닥칠 것을 예언하였다. 이는 실제로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에 일어났다. 이에 제자들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유다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호를 보내기로 결정하였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통하여 이를 장로들에게 전달하였다”(사도 11,27-30).

또한 바오로가 항해를 떠날 때에는 하루치만이 아니라 여러 날을 위한 물품과 식량이 제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 28,10).

그리고 사도가 말하기를 “도둑질하던 사람은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자기 손으로 애써 좋은 일을 하여 곤궁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에페 4,28)라고 한 말씀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또는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는 주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오히려 손으로 일하여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합니다. 또한 자신이 아무에게도 짐이 되지 않기 위하여 손으로 일하였다는 점, 그리고 직업이 같았던 아퀼라와 함께 일하며 생계를 마련하였다는 사실은, 그가 하늘의 새나 들의 백합을 문자 그대로 본받은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여러 성경 구절들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이 인간적인 관습에 따라 이러한 것들을 마련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주님을 섬기며, 자신의 행위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이러한 이익을 목표로 삼는 사람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58. 이 모든 계명은 다음의 원칙으로 귀결된다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곧, 이러한 것들을 마련하는 데에 있어서도 하느님 나라를 목표로 삼아야 하며,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이러한 것들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이러한 것들이 부족해지는 일이 있을지라도—하느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흔히 이를 허락하시듯이—그것들은 우리의 결심을 약화시키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어려움과 시련을 통하여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3-5).

사도 바오로께서는 자신의 고난을 회상하며 감옥에 갇히거나 난파당한 일뿐만 아니라,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헐벗음을 겪었다고 증언하셨습니다(2코린 11,25 참조).

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사도께서 하느님 나라를 구하는 중에 굶주림과 추위를 겪었다 하여 주님의 약속을 의심하셨으리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이 모든 것은 곁들어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온전히 돌보시는 의사이신 그분께서는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한지 판단하시어, 때로는 주시고 때로는 거두시며 현세와 내세의 삶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로하시기도 하고 시험하시기도 하며 우리를 인도하시니, 이 삶이 끝난 후 우리가 영원한 고향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축의 먹이를 잠시 줄인다고 해서 돌봄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치료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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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4월 2026, 1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