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4월 11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2권 54-55:

54.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먹기 위해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먹어야 할 것입니다. 곧, 복음을 전할 수 있기 위하여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먹기 위해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에게 음식이 복음보다 더 중요하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의 참된 선은 먹는 데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먹는 일은 본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또한 이러한 가치관의 복음 전파를 금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곧,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이 합당하며 또한 주님께서도 이를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복음에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1코린 9,14참조). 그러나 사도께서는 이 허락을 사용하지 않으셨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복음을 사고팔 기회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사도께서는 그들에게서 그러한 구실을 주지 않으려고 자신의 손으로 양식을 마련하는 데에 힘쓰셨습니다(사도 20,34 참조). 이와 관련하여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회를 노리는 자들에게 그 기회를 없애 버리려는 것”(2코린 11,12)이라고 하십니다.

사도께서도 다른 선량한 사도들처럼 주님께서 허락하신 대로 복음 선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결코 복음 선포의 목적을 먹는 것에 두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먹는 것의 목적을 복음에 두셨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음식이나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마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복음을 전하는 꼴이 되는데, 이러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전에 봉직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양식을 얻고, 제단 일을 맡은 이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복음으로 생활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권리를 하나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1코린 9,13-15 참조).

이처럼 사도께서는 이 권리가 '허용된 것'이지 '명령된 것'은 아님을 보여주십니다. 만약 명령이었다면 사도께서 주님의 계명을 어긴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이런 말을 쓴 것도 아닙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습니다. 아무도 나의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1코린 9,15 ).

사도께서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신 이유는, 복음을 이용하려는 자들 때문에 이미 스스로 노동하여 생계를 꾸리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도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즉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복음의 목적으로 삼아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은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사도에게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 것일까요?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곧, 나는 살아갈 것이 없거나 영원한 진리를 선포함으로써 물질적인 이익을 얻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복음 선포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어서 사도는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까? 복음 그 자체와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자신의 보상을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1코린 9,17)라고 말합니다. 만일 내가 삶에 필요한 것들이 부족해서 하는 수 없이 복음을 전한다면, 복음의 보상은 나를 통하여 다른 이들이 받게 될 것입니다. 곧, 나의 설교로 말미암아 복음을 사랑하게 되는 이들이 그 보상을 받을 것이며, 나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내가 복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이득만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정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곧, 복음을 아들로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품꾼처럼 나누어 주는 것이며, 맡겨진 관리자로서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단지 이 비참한 종살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외부에서 주어지는 양식만을 받을 뿐이며,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는 기쁨은 얻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다른 곳에서 사도는 자신을 “관리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아들로 입양된 종도 자신이 참여할 자격을 얻은 재산을 공동 상속자들에게 충실히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억지로 한다면 맡겨진 관리직을 수행하는 것뿐입니다”라고 말한 곳에서는,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나누어 주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관리자를 의미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55.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다른 어떤 것을 위하여 추구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것을 위하여 추구되는 것보다 열등한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위하여 그 무엇을 찾는 그것이 바로 “첫째”가 되는 것이지, 그 무엇이 그것을 통하여 추구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먹을 것을 위해 복음과 하느님 나라를 찾는다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보다 먹을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먹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찾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곧 먹을 것을 먼저 두고 그 다음에 하느님 나라를 두는 것이며, 다시 말해 저것을 이것보다 더 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하여 먹을 것을 찾는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를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곧,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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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월 2026,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