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3월 30일
38. 제가 보기에는 기도의 일곱 가지 간구가 이 모든 설교의 모태가 된 참행복의 일곱이라는 수와 서로 상응하는 것 같습니다.
만일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복됨에 해당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이 사람들 안에서 영원토록 지속될 거룩한 경외심으로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경건(pietà)이 “온유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라는 복됨에 해당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나라가 우리 안에 오시어 우리가 더욱 온유해지고 그분을 거스르지 않게 해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늘에서 땅으로, 곧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오시는 그때에 그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뻐하며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라고 말씀하실 때 말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 안에서 기뻐하리니, 온유한 이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라”(시편 33,2 [참조])라는 말씀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만일 지성이 “애통하는 자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는 복됨에 해당한다면, 우리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땅’이라 할 수 있는 몸이 ‘하늘’이라 할 수 있는 영에 온전히 복종하게 되어, 깊고 완전한 평화 안에서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유일한 슬픔은, 이 두 요소가 서로 갈등하며 “내 지체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고 말하게 만들고,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로마 7,23-24)라고 탄식하게 만드는 바로 그 갈등입니다. 만일 굳셈(용기)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배부르게 될 것이다”라는 복됨에 해당한다면,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 양식으로 힘을 얻고 지탱되어, 마침내 완전한 충만함에 이르게 되도록 말입니다.
만일 조언이 “자비로운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자비를 입을 것이다”라는 복됨에 해당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빚진 이들을 용서함으로써, 우리도 용서를 받게 해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지성이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하느님을 뵐 것이다”라는 복됨에 해당한다면, 우리는 유혹에 들지 않게 해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나뉘어 하나의 선이 아니라 여러 것을 추구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하나의 선에 향하게 하도록 말입니다. 이 세속적인 것들에 관한 유혹, 사람들이 크고 두렵다고 여기는 유혹들은, 사실 사람들이 좋고 즐겁다고 여기는 것들에서 오는 유혹에 먼저 지지 않는 한,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만일 지혜가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는 복됨에 해당한다면, 우리는 악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 해방이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하여,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우리가 양자의 영 안에서 “아빠, 아버지!”(로마 8,15)라고 부르게 할 것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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