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3월 29일
36. 이제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 담긴 이 일곱 가지 간구 사이에 있는 차이점을 명확히 짚어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시간 속에서 흘러가지만, 우리는 영원한 삶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들이 존엄성에 있어서는 더 앞서지만, 그 영원한 것들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적인 것들을 지나가야 합니다.
처음 세 가지 간구는 비록 시간 속에서 영위되는 현재의 삶에서 시작되지만, 그 세 가지는 영원 속에서도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함은 주님께서 겸손한 모습으로 오심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반면 그분의 나라가 임하는 것, 곧 주님께서 영광 중에 오실 때는 이 세대의 끝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역시(여기서 '하늘과 땅'이 의인과 죄인이든, 영과 육이든, 혹은 주님과 교회이든, 아니면 이 세 가지 모두를 뜻하든 간에) 우리의 행복이 완전해지는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세상의 마지막 때에야 이루어질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이름의 거룩함은 영원할 것이고,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며, 우리에게 약속된 행복 또한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는 우리에게 약속된 그 내세에서 완벽하고 서로 결합된 상태로 영원히 머물게 될 것입니다.
37. 나머지 네 가지 간구는 시간 속의 삶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중 첫 번째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입니다. 이 양식을 '일용할' 것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그것이 영적인 양식이든 성찬의 양식이든 혹은 눈에 보이는 음식이든 간에, '오늘'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듯 언제나 이 시대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양식이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일용할 것’이라고 불리는 이 양식이, 말씀의 소리나 시간적인 어떤 표징들을 통해 영혼에 제공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형언할 수 없는 진리의 빛이 더 이상 육체적인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직 마음의 순수함 안에서 주어지게 될 때에는, 이러한 것(이러한 시간적인 수단)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음료가 아닌 '빵'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빵을 떼어 씹어야 영양분이 되듯이 성경 말씀이 그 의미를 드러내고 설명해 줌으로써 영혼을 먹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 음료는 있는 그대로 몸에 흡수됩니다. 즉, 지금 이 시대에는 진리가 '일용할 양식'으로서 존재하지만, 나중에는 더 이상 논쟁하거나 설명할 필요 없이(즉, 떼거나 씹을 필요 없이) 투명하고 빛나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그때 진리는 '음료'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또 서로 용서합니다. 이것이 남은 네 가지 간구 가운데 두 번째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죄의 용서도 없을 것입니다. 유혹은 이 시간의 삶을 괴롭히지만, 그곳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당신 얼굴의 그늘에 숨기신다”(시편 30,21)는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벗어나기를 바라는 악과, 그 악에서의 해방 역시 이 삶에 속한 것입니다. 이 삶은 하느님의 정의로 인해 죽음을 향해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분의 자비로 우리가 그로부터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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