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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3월 26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2권 30:

30. 여섯 번째 간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일부 사본에는 “인도하지 마소서”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어 단어 ‘에이세넹케스’(εἰσενέγκῃς)를 이 두 가지 방식으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기도할 때 “저희를 유혹으로 이끌리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는데, 이는 “인도하다”라는 말이 기록된 의미를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실로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도 유혹으로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신비로운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에 따라, 하느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이가 유혹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실 뿐입니다.
종종 명백한 원인들로 인해 하느님께서는 누군가를 버려두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하시며, 그가 유혹에 빠지는 것을 허용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유혹을 받는 것과, 유혹에 빠지도록 이끌리는 것은 서로 다른 일 입니다.
유혹이 없이는 아무도 시험을 받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러하니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아는 것이 적다”(집회 34,10)라는 말씀이 있으며, 다른 이들의 눈에도 그러하니 사도께서는 “내 육신의 상태가 여러분에게는 하나의 시련이었지만, 여러분은 나를 업신여기지도 않았고 역겨워하지도 않았습니다”(갈라 4,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사도는 그들이 확고부동하며, 육을 따라 사도에게 닥친 환난 중에도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다 알고 계시기에, 모든 유혹이 있기 전에도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31. 그러므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는지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시는 것이다”(신명 13,3[4])라는 말씀에서 “알아보시려는 것”이란, 여러분 스스로가 알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날을 가리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뜻에서 “행복한 날”이라고 부르거나, 추위가 우리를 게으르게 만든다는 뜻에서 “게으른 추위”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일상 언어뿐만 아니라 학자들의 담화나 거룩한 성경에서도 수없이 발견됩니다.
구약성경을 반대하는 이단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여, “주 너희의 하느님께서 너희를 시험하신다”라는 구절이 하느님의 무지(無知) 상태를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마치 복음서에 주님에 관하여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요한 6,6)라고 기록되지 않은 것처럼 여기는 처사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시험받는 이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다면, 시험을 통해 실제로 무엇을 보고자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분명 시험받는 이가 자기 자신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빵으로 배불리 먹는 군중을 보면서 먹을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자신의 불신을 스스로 질책하게 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요한 6,7).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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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3월 2026,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