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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3월 24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2권 28:

28. 다섯 번째 청원이 이어집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여기서 '빚'이란 명백히 죄를 의미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 곧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 5,26)라는 말씀에 근거합니다. 또는 주님께서 어떤 이들을 “빚진 자들”이라고 부르신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탑이 무너져 죽은 사람들이나, 헤로데가 그들의 피를 희생 제물의 피와 섞어 버린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시며 그들을 “빚진 자들”이라고 부르신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들을 유독 큰 빚을 진 자들, 즉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아시고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 13,5)라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빚진 돈을 탕감해 주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우리에게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잘못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금전적인 빚을 탕감해 주는 일은 오히려 앞서 나온 계명, 즉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40)라는 가르침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돈을 갚아야 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그가 갚기를 거부하여 재판에까지 가려고 할 때에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종은 싸워서는 안 됩니다”(2티모 2,24). 그러니 본인의 의지로든 합의에 의해서든 돈을 갚지 않으려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그것을 그대로 두십시오.
그가 돈을 갚으려 하지 않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정말 돈이 없거나, 아니면 인색하고 남의 것을 탐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는 결국 '가난'을 뜻합니다. 물질적인 가난이거나 마음의 가난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에게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 가련한 이를 용서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다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기꺼이 잃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만약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아야 함에도 갚지 않아 손해를 입게 될 채무자를 바로잡아 주기 위해 온유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최선을 다해 돌려받으려 노력한다면, 그것은 죄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유익한 일이 됩니다. 타인의 돈으로 부유해지려다가 믿음에서 손해를 입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큰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다섯 번째 청원인 “저희 죄(빚)를 용서하시고”가 단순히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타인이 우리에게 저지른 모든 잘못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돈 문제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갚을 수 있으면서도 갚지 않는다면 그는 당신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용서한다면, 이 말로 기도하도록 명령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빚진 돈까지도 기꺼이 탕감하도록 권고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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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월 2026, 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