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3월 22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2권 22, 23, 24:

 

22. 또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말씀은, 성인들과 의인들 안에서처럼 죄인들 안에서도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두 가지 의미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원수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실제로 그리스도교와 가톨릭의 이름이 널리 퍼지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을 원수로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즉,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는 의인들처럼 죄인들도 당신의 뜻을 행하게 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각자에게 합당한 몫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마지막 심판 때, 의인들에게는 상급이 주어지고 죄인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내려져 양들이 염소들로부터 분리될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23. 하늘과 땅을 ‘영’과 ‘육’으로 이해하는 것 또한 전혀 부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의 신앙과 희망에 온전히 부합합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로마 7,24[5] 참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먼저 마음, 즉 영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나중에 죽음이 승리에 삼켜지고 이 죽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게 될 때(이는 육신의 부활과 사도가 선포한 의인들에게 약속된 변화를 통해 일어날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는 영이 하느님을 거스르지 않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실행하듯이, 몸 또한 영이나 영혼에 맞서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영혼은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육적인 습관에 기울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 안에서 지극한 평화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선을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는 것”도 있게 될 것입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로마 7,18).

이는 아직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 즉 영에서처럼 육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 안에서 고통을 겪을 때에도 하느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이러한 고통은, 우리의 본성이 죄로 말미암아 마땅히 받게 된 죽을 운명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마음속의 내적 인간에 따라 우리가 율법을 기뻐하듯이, 우리의 몸이 변화된 뒤에는 어떤 고통이나 육적인 정욕도 우리의 행복을 거스르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4. “당신(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즉,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그분(신랑)’ 안에서처럼, 그분과 결합한 신부인 ‘교회(여인)’ 안에서도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땅을 비옥하게 하듯, 하늘과 땅은 남성과 여성으로도 충분히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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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3월 2026, 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