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3월 15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2권 16:

16. 우리가 영원한 상속으로 불림 받아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가 되고 입양된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며 바로 그 은총을 간절히 청하며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이름은 우리 안에 사랑의 덕을 불러일으킵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사람들이 하느님께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그 안에는 간절한 애정과 함께 우리가 청하는 것을 얻으리라는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실로 우리가 무엇이든 청하기에 앞서 이미 이토록 큰 선물을 받았으니, 곧 하느님을 향하여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허락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신 분께서, 청하는 자녀들에게 무엇인들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끝으로, “저희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는 그토록 위대하신 아버지께 어울리지 않는 자녀가 되지 않도록 얼마나 마음을 다해야 하겠습니까? 만일 어떤 평민(plebeo)이 한 연로한 원로원 의원(senatore)에게서 “아버지”라 불리도록 허락을 받았다면, 그는 자신의 비천한 출신과 가난, 낮은 신분을 생각하며 크게 당황할 것이며 쉽게 그렇게 부르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토록 무거운데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얼마나 더 정성을 들여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녀로서 거부하시는 것이, 의원이 거지를 거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연한 일일 텐데 말이지요. 의원은 거지의 처지를 멸시하지만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는 인간적 취약함을 지닌 반면, 하느님께서는 결코 악에 물들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시는 그 자비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이를 얻기 위하여 어떠한 비용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직 선한 의지만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부유한 이들과 귀족들에게도 권고가 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 앞에서 교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그들 모두가 함께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형제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코 진실하고 성실하게 이 기도를 바칠 수 없을 것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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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3월 2026,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