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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2월 23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1권 76:

 

76.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며,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계명은 형제들의 몇 몇 죄들에 대해서는 기도하라는 명령이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짧은 지혜로 인해 거룩한 성경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성경이 모순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대적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이 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일반적으로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로마 12,14) 라고 가르칩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를 거슬러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확실한 처벌과 구원이 이미 위태로워졌음을 보고, 그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그에게 유익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지극히 공정하신 재판관께서 당신의 기도를 물리치시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다시피, 성인들이 누군가를 대적하여 기도했던 사례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말해야 하겠습니까? 그들은 상대가 교화되기를 바라며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은 그들의 최종적인 처벌을 위해 기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조차도, 주님의 배신자를 거슬러 예언자가 말한 것과는 다릅니다. 그때의 말씀은 형벌을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장차 일어날 일을 예언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충분히 언급했던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를 대적한 사도의 기도와도 결이 다릅니다. 오히려 이는 요한 계시록에서 순교자들이 자신들의 피를 갚아달라고(복수해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계시 6,10)과 같습니다. 그런데 첫 순교자 스테파노는 정작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사도 7,60) 우리는 이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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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월 2026,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