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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2월 20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1권 73:

 

73. 이 논의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것은 사도 성 요한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요한 5, 16).

사도께서는 어떤 형제들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가 계명으로써 기도해야 할 대상이 아닌 어떤 형제들임을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반면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태 5,44). 이 문제는, 우리 형제들 가운데 원수들의 박해보다 훨씬 더 무거운 죄를 짓는 자들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형제'가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는 것은 성경의 많은 증언으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사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자 아닌 남편은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해졌고, 신자 아닌 아내는 그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졌기 때문입니다" (1코린 7,14). 사도께서는 여기에 "우리의"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으셨으나, '형제'라는 이름으로 믿지 않는 아내를 둔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사도는 조금 뒤에 다시 말합니다. "그러나 신자 아닌 쪽에서 헤어지겠다면 헤어지십시오. 그러한 경우에는 형제나 자매가 속박을 받지 않습니다" (1코린 7,15).

형제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게 된 사람이 형제들을 대적하고, 시기라는 불꽃에 휩싸여 자기 자신을 하느님과 화해시켜 주었던 바로 그 은총에 맞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란, 형제에 대한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도, 마음의 연약함으로 인해 형제가 요구하는 의무를 완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죄를 말합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루카 23,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은 아직 성령의 은총을 받지 못했기에, 아직 거룩한 형제 공동체에 들어오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복된 스테파노 또한 사도행전에서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들 역시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며, 형제들의 공통된 은총을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를 위해 기도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는 이미 형제였으나, 이후 시기심에 사로잡혀 형제들과 싸움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죄(ad mortem)’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던 이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였으며, 그들이 단지 두려움 때문에 넘어졌던 것이기에 용서를 베풀어 줄 것을 권고합니다.

사도는 말씀합니다.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그대도 그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2티모 4,14-15). 이어서 사도는 자신이 기도한 이들에 대해 덧붙여 말합니다.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2 티모 4, 16).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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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월 2026, 1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