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알현] 교황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친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 초대를 외면하지 맙시다”
[교리교육]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1. 하느님께서는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하 공의회)에 관한 교리 교육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에 대해 더 심도 있게 살펴봅시다. 이 문헌은 공의회의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문헌 중 하나입니다. 이를 소개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내용이며, 「하느님의 말씀」은 이를 다시금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이제부터 그 관계는 우정의 관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계약의 유일한 조건을 사랑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요한복음의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오직 은총만이 우리를 하느님의 아드님 안에서 하느님의 친구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요한 복음 주해」, 강론 86). 실제로 옛 격언 중에 “우정은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거나, 그들을 그렇게 만들거나 둘 중 하나이다”(Amicitia aut pares invenit, aut facit)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과 동등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 아드님 안에서 우리를 당신과 비슷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 전체에서 볼 수 있듯이, 계약에는 처음에는 거리감이 존재합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은 항상 비대칭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당신 아드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심으로써 계약은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고, 연약한 인간인 우리가 당신을 닮아가도록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은 뱀이 하와에게 제시했던 것처럼 불순종이나 죄를 통해서가(창세 3,5 참조) 아니라, 사람이 되신 아드님과의 관계를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상기했던 주 예수님의 말씀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를 「하느님의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골로 1,15; 1디모 1,17 참조) 이 계시로써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탈출 33,11; 요한 15,14-15 참조), 인간과 사귀시며(바룩 3,38 참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신다”(「하느님의 말씀」, 2항). 창세기의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신앙 원조들과 함께하시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하느님의 말씀」, 3항 참조). 그리고 죄로 인해 이 대화가 중단되었을 때에도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당신 피조물과의 만남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때때로 그들과 계약을 맺으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 계시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 안에서 육신을 취하시어 우리를 찾아오실 때, 단절되었던 대화는 결정적으로 회복됩니다. 계약은 새롭고 영원하며, 그 무엇도 우리를 그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시는 우정의 대화적 성격을 지니며, 인간 우정의 경험에서처럼 침묵을 용납하지 않고 진실한 말의 교환을 통해 길러집니다.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은 또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말과 잡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잡담은 피상적이고 사람들과의 진정한 친교를 이루지 못하지만, 진정한 관계에서 말은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말은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계시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우리를 그분과의 우정으로 초대하시는 동반자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닦아야 하는 첫 번째 능력은 경청입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스며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느님과 대화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알고 계신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에게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기도의 필요성이 나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이는 우선 전례 기도와 공동 기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 중 무엇을 들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또한 전례 기도와 공동 기도는 마음과 생각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개인 기도에서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루를 보내며, 한 주간을 보내는 동안 기도와 묵상, 성찰의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대화할 때 비로소 ‘그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정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끝날 수도 있고, 일상 속 사소한 부주의가 쌓여 관계가 무너지면서 결국 우정의 끈이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부르신다면, 우리는 이 부르심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그 관계를 소중히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과의 우정이 바로 우리의 구원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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