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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1월 2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1권 27:

27. 우리는 ‘제단’을 영적인 의미에서 신앙 자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단’은 가시적인 제단의 표징으로서 하느님의 내적 성전 안에 놓인 믿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예물이 예언이든, 교리든, 기도·찬송·시편이든, 혹은 그 밖의 어떤 영적 선물이든 간에, 그것이 참된 믿음에 의해 지탱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위는 그 믿음 위에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을 때만 온전하고 흠 없이 봉헌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단자들은 참된 믿음, 곧 제단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찬미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성모독을 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 자신들의 예물을 땅에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물 자체뿐 아니라, 예물을 바치는 이의 마음가짐 또한 올바르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물을 바치려 할 때, 곧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 코린 3,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에페 3, 17)라는 말씀처럼, 하느님의 내적 성전인 우리의 마음에서 예물을 드리려 할 때,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형제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그 형제는 충분히 우리에게 원망을 품을 만한 이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형제를 향해 원망할 일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를 불쾌하게 했다는 뜻이므로, 우리가 그에게 화해하러 갈 필요는 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지 그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청하듯이 그를 용서하기를 원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형제를 불쾌하게 한 일이 기억난다면, 우리는 반드시 화해하러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육체의 발걸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감정으로 가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과 사랑의 뜻을 품고 형제 앞에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칠 예물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서, 먼저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 형제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나아갈 때, 눈앞에 형제가 있어도 우리는 꾸밈없는 진심으로 그의 마음을 달래고, 그를 호의로 되돌리며, 진심 어린 마음으로 용서를 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게으른 육체의 걸음이 아니라, 사랑의 재빠른 열정으로 그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제에게 다가간 뒤에야 비로소, 처음 품었던 마음의 의도를 새롭게 하여 하느님께 예물을 온전히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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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월 2026, 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