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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Papa, basta guerra in Ucraina, ora Mosca e Kiev dialoghino Il Papa, basta guerra in Ucraina, ora Mosca e Kiev dialoghino  (ANSA)

[우르비 엣 오르비 ] 교황, "평화는 공동의 책임이며, 무관심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즉위 후 처음으로 ‘로마 시와 전 세계(Urbi et Orbi)’를 향한 전통적인 성탄 메시지를 발표하며, 약자와 억압받는 이들과의 연대를 호소했다. 교황은 “전 세계의 모든 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가자 지구와 중동, 고통받는 우크라이나는 물론 아프리카·아시아·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기억했다. 희년이 끝자락에 이르고 있지만, 교황은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강조했다.

로마와 세계에 보내는 레오 14세 교황 성하 메시지
2025년 성탄절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로지아
2025년 12월 25일, 목요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 안에서 다 함께 기뻐하세. 우리 구세주 세상에 태어나셨네. 오늘 하늘에서 참평화 우리에게 내리셨네.”(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입당송) 성탄 밤 전례는 이같이 노래하며, 베들레헴의 선포를 교회 안에 울려 퍼지게 합니다.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아기는 주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고자 성부께서 보내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평화이시며,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으로 증오와 적개심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성탄은 평화의 성탄입니다.”(성 레오 대교황, 강론 26)

예수님께서는 여관에 자리가 없었기에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막 태어나신 예수님을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누이셨습니다”(루카 2,7 참조). 모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음에도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환대받지 못하셨고, 그분의 요람은 짐승들이 먹이를 먹는 동물들의 가난한 구유였습니다.
하늘도 담아낼 수 없는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께서는 이렇게 세상에 오시기를 택하셨습니다. 사랑으로 여인에게서 태어나 우리의 인간성을 나누셨고, 사랑으로 가난과 거부를 받아들이시어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에는 하느님 아드님의 전 생애를 이끌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어질 근본적인 선택이 이미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죄의 무게를 지우는 대신, 당신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그 짐을 짊어지시겠다는 선택입니다. 이는 오직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각자가 자신의 책임 몫을 떠맡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없이 우리를 창조하셨지만,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시지는 않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강론」 169, 11.13 참조). 곧 사랑하려는 우리의 자유로운 의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이는 구원받지 못하고 길을 잃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1요한 4,20 참조).

형제자매 여러분, 평화의 길은 바로 ‘책임’에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모든 차원에서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며, 동시에 고통받는 이들의 처지에 서며 약하고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한다면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기에 우리의 평화이시며, 이어서 모든 갈등, 곧 개인 간의 갈등에서 국제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극복하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죄에서 해방되고 용서받은 마음 없이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 평화를 건설하는 남녀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시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은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의 은총으로 우리는 증오와 폭력, 대립을 물리치고 대화와 평화, 화해를 실천하기 위해 각자의 몫을 다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합니다.

이 축제의 날에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특히 최근 저의 첫 사목 방문을 통해 만나고자 했던 중동 지역의 신자들에게 따뜻하고 부성 어린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그들의 두려움을 들었으며,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권력의 역학 관계 앞에서 그들이 느끼는 무력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는 바로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과 같은 분이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우리는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시리아를 위해 그분께 정의와 평화와 안정을 간구하며 하느님의 이 말씀을 신뢰합니다. “정의의 결과는 평화가 되고 정의의 성과는 영원히 평온과 신뢰가 되리라”(이사 32,17).

평화의 왕자이신 주님께 유럽 대륙 전체를 맡겨 드리며, 그분께서 유럽이 그리스도교적 뿌리와 역사에 충실하면서 공동체적이고 협력적인 정신을 계속해서 키워 가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연대하고 환대하는 마음을 갖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특별히 순교의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해 기도합니다. 무기의 굉음이 멎고, 국제 사회의 지원 속에서 관련 당사자들이 진실하고 직접적이며 상호 존중하는 대화를 나눌 용기를 찾기를 바랍니다.

베들레헴의 아기께 세상 모든 전쟁, 특히 잊혀진 전쟁의 희생자들을 위한 평화와 위로를 간구합니다. 또한 불의와 정치적 불안정, 종교적 박해와 테러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특히 수단, 남수단, 말리, 부르키나파소, 콩고민주공화국의 형제자매들을 기억합니다.

희망의 희년을 마무리하는 이 시기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 사랑하는 아이티 국민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 땅의 모든 폭력이 종식되고 평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정치적 책임을 맡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시어, 수많은 도전에 직면한 상황 속에서도 이념적·진영적 배제 대신 공동선을 위한 대화에 자리를 내어 주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평화의 왕자께 미얀마를 봉헌하며, 화해의 미래를 비추는 빛으로 그 땅을 밝혀 주시고,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되찾아 주시며, 집과 안전, 내일에 대한 신뢰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동반하시어 미얀마 전체 국민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또한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오랜 우정이 회복되고, 관련 당사자들이 화해와 평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수 있도록 그분께 간청합니다.

아울러 최근의 파괴적인 자연재해로 큰 시련을 겪고 있는 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국민들 역시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이러한 고통 앞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돕기 위한 우리의 공동 책임을 새롭게 다짐하도록 모두를 초대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둠 속에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오셨지만”(요한 1,9),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요한 1,11).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무관심에 굴복하지 않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비참함에 무관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짊어지셨고, 우리 각자와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가자 지구의 주민들처럼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들, 예멘 국민처럼 굶주림과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 지중해를 건너거나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며 미래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수많은 난민과 이주민들, 일자리를 잃었거나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 저임금에 시달리며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이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어느 시인이 쓴 것처럼, 모든 땅에서 터져 나오는 평화의 부르짖음이 하느님의 마음에 닿고 있습니다.

"그것은 포성만 멈춘 휴전의 평화도 아니고, 이리와 어린양이 어울리는 환상 속의 평화도 아닙니다. 오히려 격정의 시간이 다 지나가고 오직 깊은 피로만을 말할 수 있게 된 우리 마음의 상태와 같습니다. [...] 그 평화가 오기를, 들판에 피어나는 들꽃처럼 문득 찾아오기를. 이 메마른 땅에 너무나 절실한, 그런 이름 없는 들꽃 같은 평화가."[1]
이 거룩한 날에, 도움이 필요하고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에게 마음을 엽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두 팔을 벌려 우리를 맞아들이시며 당신의 신성을 열어 보여 주시는 아기 예수님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그분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 1,12).

며칠 뒤면 희년이 끝납니다. 성문들은 닫히겠지만,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열려 있는 문이시며, 우리를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이끄십니다. 이것이 오늘 전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태어나신 아기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시며, 단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분의 오심은 잠깐 스쳐 가는 방문이 아니라, 머무르시며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기 위한 오심입니다. 그분 안에서 모든 상처는 치유되고, 모든 마음은 쉼과 평화를 찾습니다. “주님의 성탄은 평화의 성탄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마음 깊이 평화롭고 거룩한 성탄을 기원합니다!

***

[1] 예후다 아미하이, “거친 평화”, in 『예후다 아미하이 시선집』, 파라, 스트라우스 앤 지루 출판사, 2015년.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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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2월 2025, 1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