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12월 30일
24. 그러므로 이 죄들에는 점진적인 단계가 있습니다. 즉, 화를 내지만 그 감정을 마음속에 숨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가 마음속을 넘어 목소리로 표출되기 시작하여, 비록 명확한 말을 하지는 않더라도 그 분노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면, 이는 침묵 속에 억눌린 단순한 분노의 표출보다 더 심각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만약 화난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 향하여 모욕을 표현하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말까지 한다면, 이것이 단순히 화난 목소리의 소리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첫 번째 경우에는 ‘분노’라는 한 가지 요소만이 있습니다.
두 번째 경우에는 ‘분노’와 그 분노를 드러내는 ‘목소리’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세 번째 경우에는 ‘분노’와 (분노를 드러내는) ‘목소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모욕’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함께 있습니다.
첫 번째 경우에는 한 가지 요소, 즉 분노가 있습니다. 두 번째 경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분노 외에 분노를 드러내는 말이 있습니다. 세 번째 경우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분노와 분노를 드러내는 목소리 외에, 이 목소리가 모욕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이 세 가지 죄목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즉, 단죄받을 만한 죄, 최고 의회의 선고를 받을 만한 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옥의 불에 넘겨질 수 있는 죄입니다. 재판에서는 여전히 자신을 변호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최고 의회에서는, 비록 이 역시 사법적인 행위이기는 하지만, 차이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단죄된 것과 선고하는 것은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최고 의회의 고유한 임무는 판결을 선고하는 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는 이제 피고인을 두고 ‘정죄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논하는 단계가 아니라, 이미 정죄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한 자에게 어떤 형벌을 내려야 하는지를 판사들이 서로 논의하는 단계입니다.
반면, 지옥의 불에서는 더 이상 재판에서처럼 유죄 여부를 따지는 일도, 최고 의회에서처럼 형벌의 정도를 논의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이미 선고와 형벌이 확정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죄와 선고에는 점진적인 단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영혼이 마땅히 받아야 할 죄에 따른 벌들이 무슨 비가시적인 척도로 부과되어야 하고, 누가 이것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제 우리는 바리사이들의 의로움과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더 큰 의로움’ 사이의 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살인은 말로 하는 모욕보다 훨씬 더 중대한 죄입니다. 그런데도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에 따라서는 살인이 재판에 부쳐지지만, 그리스도의 의로움에서는 세 가지 죄 중 가장 가벼운 죄, 곧 단순한 분노조차 재판에 부쳐집니다.
바리사이들은 사람들 앞에서 살인에 대해 논의하지만, 그리스도의 의로움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심판에 맡겨집니다. 그리고 그 심판을 받는 자들은 결국 지옥의 불로 귀결됩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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