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2024.11.03 Discorso della montagna 2024.11.03 Discorso della montagn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12월 21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1권 17:

17.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마태 5, 14)

이전에 주님께서 “[너희는] 이 땅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듯, 이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땅’이란 표현은 우리가 발로 밟고 다니는 ‘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들, 혹은 죄인들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부패를 떨쳐내고 치유하시기 위하여 사도적 소금을 보내신 것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세상”이라는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 있으면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사도들은 바로 그들을 비추기 위해 파견된 것입니다.

“산 위에 자리 잡은 도시는 감추어질 수 없다.”(마태 5, 14)
이는 주님께서 가르치고자 하는 산으로서 지고하고 위대한 정의 위에 확고히 세워진 도시를 의미합니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마태 5, 15)
우리는 “함지”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아무도 등불을 켠 다음 그것을 함지 아래에 숨기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함지 속에 두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등불을 숨기는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서였을까요?
혹은 “함지 속에 두다”란 표현은 진리를 설교하기보다 육체의 편안함을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까요? 물질적이고 일시적인 것에서 손해를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두려워 진리를 설교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사용되었을까요?

“모조”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게 됩니다”(2코린 5, 10)라고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대로 이것은 보상의 척도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대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마태 7, 2)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육신의 “모조[척도]”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해진 날 수에 따라 시작되고 사라지는 육신을 만족시키는 현세적 재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영적인 재물은 그러한 영원한 재물과 한계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요한 3, 34).

그러므로 누구 일시적인 편안함으로 올바른 교리의 빛을 가리고 덮는 사람은 등불을 함지 속에 두는 사람이 됩니다.

반면, “등경 위에 놓는다”라는 것은 자신의 몸(육체)을 하느님을 섬기기 위하여 사용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진리의 설교가 위에서 이루어지고 그에 상응하는 육체의 봉사가 뒷받침하여 육체의 봉사를 통해 진리가 더욱 밝게 빛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높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는데, 다시 말해서 목소리, 말, 다른 움직임과 같은 육체의 다양한 기관들을 통하여 배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머리가 지시하는 것과 같이 제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등불을 등경 위에 두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1코린 9,26–27)

마지막으로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마태 5, 15) 말씀하실 때, 그 ‘집’이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 14)라고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거주하는 세상 자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가 “집”이란 단어가 교회를 의미한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결코 부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번역 박수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20 12월 2025,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