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고통받는 교황 “질병은 사랑의 학교… 하느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Alessandro Di Bussolo
4월 6일 ‘병자들과 보건 분야의 희년’ 미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 깜짝 등장해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휠체어를 탄 교황은 개인 건강 관리 보좌관 마시밀리아노 스트라페티의 도움을 받아 제대 앞까지 이동했다. 교황청 복음화부 세계복음화부서 장관 직무 대행 리노 피시켈라 대주교의 강복이 끝나자, 교황은 짧지만 따뜻한 인사말을 신자들에게 건넸다. “모두 좋은 주일 보내세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신자들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이 특별한 순간을 지켜봤다. 이어 독서자들은 교황의 감사 메시지를 대신 전했다. “이 미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애정 어린 인사를 전합니다. 제 건강을 위해 하느님께 바친 기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희년 순례가 풍성한 열매를 맺길 바랍니다.” 교황은 “사랑하는 이들과 병든 이들, 고통받는 이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신자들”에게 축복을 전했다. 교황청 공보실은 교황이 광장에 나오기 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고해성사(화해의 성사)를 받고 기도를 바친 다음, 성문을 지나면서 병자들의 희년 순례에 함께했다고 밝혔다.
다른 이들의 도움에 의존하는 경험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회복 중인 교황은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2만 명의 순례자들, 특히 병자들과 많은 것을 나누고 있다고 털어놨다. 피시켈라 대주교는 강론을 대독하기 전 “교황은 지금 우리에게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 우리와 특별히 가까이 함께하고 있다”며 “많은 병자들과 마찬가지로 교황도 방송을 통해 이 미사에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신자들은 감동 속에 박수를 보냈다. 교황은 피시켈라 대주교가 대독한 강론을 통해 “아픔을 겪는 경험, 몸이 약해지는 느낌, 많은 것을 다른 이들의 도움에 의존하고 지지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자신도 함께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항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매일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지나간 것을 아쉬워하거나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모두 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죠. 우리가 받는 은총에 하느님과 이웃들에게 감사하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온전히 맡기고 신뢰하는 태도도 배우게 됩니다.”
병상에서 신앙을 강화합시다
눈물 어린 눈과 감동에 가득 찬 마음으로, 휠체어를 타거나 천천히 걸어서 베르니니의 반원형 광장에 도착한 많은 환우들과 그들을 동반하는 자원봉사자, 간호사, 의사들은 피시켈라 대주교가 또렷하게 대독하는 교황의 말씀을 경청했다. “병원 병실과 병상은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이사 43,19) 이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굳건히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 정말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4월 6일 사순 제5주일 전례의 제1독서인 이사야서 말씀으로, 교황은 강론에서 이를 해설했다. 그 말씀은 주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루살렘은 네부카드네자르 2세 왕의 군대에 정복됐고, 유배된 백성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무척 어려운 시기였고, 모든 것이 사라진 듯했습니다.” 교황은 바로 이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라고 초대하신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백성입니다. 과거의 거짓된 안전이 무너진 후, 무엇이 진정 중요한 것인지 깨달은 백성입니다. 그것은 바로 한마음으로 주님의 빛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
교황은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만나는 다른 방법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마음의 회심, 공정과 정의의 실천, 가난한 이와 궁핍한 이들에 대한 돌봄, 자비의 실천입니다.” 교황은 요한복음에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도 한 사람,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의 삶은 무너졌습니다. 지리적 유배가 아니라 도덕적 단죄로 말입니다.” 교황은 그녀에게도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박해자들이 이미 돌을 손에 쥐고 있을 때, 바로 그 순간 예수님께서 그녀의 삶에 들어오셔서 그녀를 지켜 주시고 폭력에서 구해내시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힘겨운 시련 속, 우리를 더 강하게 감싸안는 하느님 사랑
교황은 이 이야기들이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강조하며, 이를 통해 이날 전례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사순 여정 중에 새롭게 하도록 초대한다고 말했다.
“유배의 고통도, 폭력의 상처도, 죄의 무게도, 어떤 삶의 어려움도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우리가 문을 열어드리는 순간, 그분은 바로 들어오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묵시 3,20 참조). 오히려 시련이 더 깊어질수록, 그분께서는 은총과 사랑으로 우리를 일으키시기 위해 더욱 따뜻하게 우리를 품어 안으십니다.”
질병의 시련 속에서도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는 하느님
교황은 “질병은 분명 삶의 어렵고 힘든 시련 중 하나”라며 “이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직접 체험한다”고 말했다. “질병은 우리를 마치 고향을 잃은 유배자처럼, 또는 복음 속 여인처럼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앞날에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분께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긴다면, 특히 우리의 힘이 완전히 바닥났을 때, 우리는 그분이 함께하시는 깊은 위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병상, “거룩한 공간”이 되다
교황은 사람이 되신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약함을 모든 면에서 함께 나누길 원하셨다”며, 따라서 우리는 그분께 “우리의 고통을 말씀드리고 의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분에게서 우리는 연민과 친밀함, 온유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황은 주님께 대한 굳건한 사랑 안에서 “그분께서 우리가 서로에게 당신의 현존을 전하는 ‘천사’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참여시킨다”고 말했다. “그래서 종종 병상은 고통받는 이들이나 그들을 돌보는 이들 모두에게 구원과 해방의 ‘거룩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연민의 불꽃으로 마음을 녹이십시오
교황은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를 인용하며 의사, 간호사, 의료 종사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이 환자들, 특히 가장 연약한 이들을 돌볼 때,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감사와 자비와 희망으로 삶을 끊임없이 새롭게 할 기회를 주십니다.”
“환자들을 여러분 삶의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치유되고, 사랑이 아닌 모든 것이 걸러지며, 연민이라는 따스하고 감미로운 불꽃이 여러분의 마음을 데워줄 것입니다.”
고통받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무정한 사회
교황은 강론을 마무리하면서 “병중에도 평온함의 아름다운 증거를 보여준”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언급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 salvi)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간다움의 참된 척도는 고통과 고통을 받는 사람에 대한 관계에서 중요하게 판가름됩니다. (…) 고통받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는 (…) 무정하고 비인간적인 사회입니다.’” 교황은 “함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며 “고통을 나누는 것은 모든 성화 여정에서 중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 세태가 종종 그러하듯 연약한 이들을 우리 삶에서 밀어내지 맙시다. 주변의 고통을 외면하지 맙시다.”
교황은 “오히려 함께 성장하고,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사랑으로 희망을 키워가는 기회로 삼자”고 당부했다. “그 사랑만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루르드의 성모찬송
신자들의 기도에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영육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도록” 위로해 주시길 청했다. 또한 “의료 종사자들이 고통과 아픔 속에 사는 이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미사를 마무리하며 신자들은 마침 성가로 ‘루르드의 성모찬송’과 희년 공식 주제가 ‘희망의 순례자들’을 함께 불렀다.
번역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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