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 비오 사제 “그분은 겸손과 순명으로 악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안주영
프란치스코 교황이 9월 23일 트윗 메시지를 통해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의 삶을 조명했다. 성인의 겸손과 순명을 강조한 교황은 성인이 영육의 고통을 언제나 사랑으로 봉헌했다고 설명했다. 이날은 교회 전례력으로 성 비오 사제 기념일이자 그가 지난 2002년 6월 1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오른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교황의 트윗
교황은 9개 언어로 된 교황 트윗 계정(@pontifex)에 카푸친 작은형제회 수도자였던 성 비오 사제의 삶을 간결하면서도 중요하게 묘사했다.
“신앙에서 힘을 얻는 애덕은 악의 세력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신부님은 평생 동안 겸손과 순명, 십자가와 사랑으로 고통을 봉헌하시면서 악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악에 맞서 싸우기
비오 성인의 오상의 신비 100주년을 맞아 지난 2018년 3월 17일 성인의 고향인 피에트렐치나를 비롯해 베네벤토, 성 조반니 로톤도를 사목 방문한 교황은 성인의 삶에서 끊임없는 싸움 중 하나인 악과의 싸움에 역점을 뒀다. 많은 전기작가들이 기록하듯이 그 싸움은 마음을 읽고 환시를 보는 성인을 싫어한 악마와의 싸움을 의미한다. 생의 마지막까지 성인을 괴롭혔던 싸움이었지만, 교황이 트윗 메시지를 통해 강조한 것처럼 성인은 애덕과 신앙으로 그 싸움에서 승리했다.
보편적 신심
이 수도자에 대한 신심은 그가 선종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가 생전에 사목했던 장소들을 넘어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딴 수많은 자선활동과 연대활동의 현장인 남미와 아프리카까지 이르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주례로 거행된 시성식 미사 당일에는 3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비오 사제와 서한을 주고받기도 했다.
산 조반니 로톤도를 방문한 오말리 추기경
9월 23일 오전 산 조반니 로톤도에 비오 성인의 이름으로 신축한 성당에서 보스턴대교구장 겸 카푸친 작은형제회 수도자 션 패트릭 오말리(Seán Patrick O’Malley) 추기경이 집전하는 미사에 수많은 신자들이 참례했다. 교황청 미성년자보호위원회 의장이기도 한 오말리 추기경은 이전에도 풀리아 지방을 방문해 성 비오 사제 기념 미사, 9일 기도, 비오 성상을 모시고 행렬하는 행사 등에 동참한 바 있다.
“평범한 성인”이 아닙니다
오말리 추기경은 이날 미사 강론을 통해 “이탈리아가 세상에 준 선물”이 성 비오 사제라고 떠올리며 “우리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모든 수사들이 우리 소명의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고 우리가 더 충실한 이가 되도록 헌신하라고 격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가 모두 “성 비오 사제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고 강조하면서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 삶의 유일한 참된 성공이 성덕”임을 비오 성인이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오말리 추기경은 비오 성인이 “평범한 성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했다. “숨겨진 삶을 살며 눈에 띄지 않은 그분은 알려지지 않은 무명 성인 중 하나가 되는 것을 기뻐했으리라 확신합니다.” 오말리 추기경은 주님께서 때때로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주목받게” 하심으로써 “그의 삶과 증거가 신앙의 창이 되도록 하신다”고 설명했다.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면 이 가난하고 단순한 농부는 하느님 사랑의 현존과 자비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도구가 될 운명이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의 유대
오말리 추기경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비오 성인의 유대를 떠올렸다. 특히 지난 196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크라쿠프대교구장 재임 당시 자신의 폴란드 친구 반다 폴타브스카 박사를 위한 기도를 청하기 위해 비오 신부에게 보낸 유명한 라틴어 서한을 언급했다. 당시 반다 폴타브스카 박사는 위중한 암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 여성은 이후 기적적으로 치유됐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게 비오 신부님의 성덕, 영웅적 미덕, 특별한 영향을 납득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오말리 추기경은 “교회뿐 아니라 상점, 식당, 공장 등 어디에서나 성인의 사진, 초상화, 성상들을 접할 수 있다”며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비오 성인의 파급 효과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오 성인의 성화를 지갑이나 가방에 넣고 다니는지요! 해마다 수백만 명이 성인의 성지를 방문하기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오 성인에게서 영감을 받은 기도 단체에 속해 있습니다. 성인의 생애 마지막 시기에는 하루에 5000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오말리 추기경은 그가 “자신의 명성이나 평판을 자랑하지 않았다”면서 “초월을 향한 통로가 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작은 비오 성인을 선택하셨다”고 강조했다.
오상의 “무게”
오말리 추기경은 비오 성인이 50년 동안 “사랑과 인내”로 짊어진 “오상의 무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고통을 가장 큰 악으로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성 비오 신부님은 가장 큰 악은 고통이 아니라 죄와 이기심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고통은 자기 연민이나 분노 혹은 절망으로 이끄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랑과 함께 탄생하고 예수님과 일치를 이룰 때 생명을 얻으며 부활로 인도합니다.”
자비의 희년 이콘
오말리 추기경은 2016년 자비의 희년을 떠올렸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비오 신부와 성 레오폴도 만딕 신부의 유해를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모셔왔다. 두 성인의 유해 앞에서 기도하려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오말리 추기경은 “내가 살면서 지낸 모든 성년 가운데 자비의 희년이 가장 위대했다”고 말했다. “교황님이 교회의 자비의 사명에 대한 모범이 되는 성인으로 성 비오 사제를 선택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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